[후기]대안학교 유럽여행


딸아이를 포함한 청소년 열명 그리고 두명의 부모와 함께 이탈리아-파리를 다녀왔다.

로마-아시시-피사-피렌체-볼로냐-토리노-브라-베니스-파리의 대장정이 무사히 끝났다.


아이들은 항상 즐겁다. 두명이면 노래부르고, 세명이면 게임하는 아이들. 노래와 웃음소리 속에 다녀온 여행이 참 좋다. 아이들답게 작은 사건도 생겼지만, 조금 시끄럽게 보이는 엄마닭과 병아리들처럼 함께 지낸 시간들 모두 행복했다. 게다가 겨울 여행만의 장점! 모든 곳의 줄이 짧고 미술관이 무료거나 할인이니 마음대로 구경하기에 딱 좋다. 여행 후 감기에 걸렸다. 아무래도 아이들이다보니 내심으론 여러가지 잔소리와 걱정이 많았던 듯하다.


두 딸아이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다. 우연처럼 시작된 발도르프 유치원, 9학년 동림자유학교 이어 풀무 고등학교까지의 선택이 다 좋았다. 가끔 궁금해지는 건 아이들의 진로. 대안학교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다른 면으론 부모와 아이가 소속된 대안학교 문화 안에서만 생활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을 앞둔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삶의 모습을,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한해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수고했을 아이들에게 휴식을 주고싶은 의미가 가장 컸다.


이번 일정의 포인트!

*미식과학대학에서 슬로푸드와 농업과 미식을 산업 속에서 펼치는 커리큘럼 맛보기

*피렌체에서 예술의도시를 만나고 문화라는 유산을 만들어내고 알려주는 것을 느끼기

*이탈리아에 익숙해진 뒤 파리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차이점을 느껴보기

*개인별 방문지 조사를 숙제로 공부하고 모두에게 배포하고 현지 안내하기


미식과학대학 탐방.

슬로푸드협회에서 설립한 미식과학대학. 2004년에 시작되었고 전세계의 학생들이 전체론적 미식학과 마케팅, 철학과 푸드트립을 수업으로 진행한다. 1학년 때는 영어로, 2.3학년이 되면 이탈리아어 역시 습득해야 한다. 농업의 소중함과 좋은 음식에 대해 배운 아이들을 사회에 내보내는 데에 필요한 연결점으로서의 커리큘럼이 풍부하다.

농업과 유기농, 미식과 식품분석을 배우지만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마케팅과 철학수업 그리고 여행이다. 가치와 철학을 배운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서 그것을 접목할 수 있도록 경제,마케팅,철학 수업 비중이 높다. 대학의 커뮤니티 팀에서는 졸업 후의 진로 분포를 표로 보여주었는데 푸드산업 시스템과 언론사에 많은 사람들이 진출해있었다. 예를 들면, 유기농 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될 수도 있고, 요리사가 될 수 있고, 대기업에 들어가 식품분석 연구원이 될 수도 있고,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거나, 작가나 칼럼니스트가 되어 전체론적인 미식학을 펼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현재 44%의 학생이 외국 학생이니 말그대로 외국인이 반을 차지하는 국제대학이다. 그들과 팀을 이루어 떠나는 식재료의 원산지로의 세계여행, 푸드트립으로 책을 벗어나 생산자와 원재료에 대한 직접적인 느낌과 존중감을 키운다.



여행 나와서의 첫번째 장애물 영어.

유럽은 영어가 잘 통하는 편. 게다가 여행객이란 돈 쓰는 입장이니 긴장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잘 웃고 눈 맞추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면 된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웃는다. 공동체 안에서 지냈기 떄문에 사람을 잘 믿고 우리라는 울타리 안으로 포함하는 밝기가 세다.


대중교통 알려주기.

여행지에서 대중교통을 알면 두려운 것이 없다. 동전 몇 개 가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알게되고 택시보다 저렴하고 안전하고 마음의 자유가 생긴다. 사람 사는 건 대부분 비슷하구나~ 안전에 대한 깨달음 혹은 신비감의 손상.


겨울여행의 변수는 비.

유럽은 한국보다 10도 정도 높으니 한파로 인한 추위는 없지만 가끔 비가 온다. 파리에선 우리가 도착하기 전 3주간 영국처럼 흐렸다고 한다. 다행히 베르사유 궁전의 뜰을 산책할 때 말고는 비를 맞은 적 없다. 팀운이란 이런 것. 밝은 아이들은 해도 좋아한다.


여행지에서의 생일.

여권사본 받으면 생일 먼저 확인. 일정 중 생일파티를 해주면 모두에게 즐거운 경험이 된다. 일정 중 생일인 아이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생일인 걸 어찌 알고 아이들이 깜짝 파티를 해주었다. 게다가 식당 주인과 짜고 시간을 끄는 치밀한 알리바이까지. 이때 알았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여행의 최대 수혜자는 나겠구나.


여행 중반의 변수는 음식.

양껏 파스타와 피자를 먹겠다고 벼르던 아이들이 슬슬 물리기 시작한다. 우연히 켠 페이스북에서 냉면이나 칼국수 사진을 보고 심각한 내상을 입기도 한다. 어르신 뿐 아니라 아이도 음식이 중요하다. 사랑을 담은 엄마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이라 더 그럴 것이다. 다행히 파리에서 페친분이 운영하는 한식당에 가서 맛있는 한식과 감사한 사랑을 가득 받을 수 있어 몸이 살아났다. 이것도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엄마라는 팀운.


파리라는 까칠함.

파리는 사계절 모두 아름답다. 그리고 수많은 볼거리와 미술관까지. 하지만 프랑스 특유의 느낌에 파리라는 대도시 특징까지 더해져 조금은 급하고 까칠하다. 지방에서 농장을 하는 집 아이를 버스에서 보다가 웃음이 난다. 한국 습관으로 세번이나 자리를 양보했지만 모두 No! 조금의 고마움도 없이 어깨를 으쓱하는 그들을 보며 아이는 당황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혁명을 만들어낸 그들의 자존심을. 별다른 이유없는 자리 양보나 밥값 계산에 고마워하지 않는 당당함을 오래 기억하길.


돈 관리라는 미션.

아이들이 가져온 금액은 대략 350유로. 오가는날 빼고 10일의 일정을 살아야하니 하루 35유로 정도. 저녁 한끼는 사먹어야 하니 15 유로 정도의 돈으로 하루를 즐겨야 한다. 당연히 쉽지 않지만 어찌어찌 아끼고 중반을 넘어서는 하루 비용을 계산해 남기는 아이들 보면서 재미있다. 부모와 함께하지 않는 여행에서만 갖는 리얼한 경험. 비단길여행의 특징은 여행지에서 필요한 일들을 직접 하게 하는 것. 출입국 신고서 쓰고, 환전하고, 차표 끊고, 입장료 내고, 리셉션 컴플레인하는 것까지 가능하면 모두 직접할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부담이지만 하고나면 뿌듯하다. 여행지에서 겪는 상황이란 결국 지식보다 두려움과 낯설음. 할수없이 해야하는 상황이 지나면 설레임과 뿌듯함이 남는다. 우리는 편안한 여행을 백업하지만 그런 커다란 보람과 기쁨을 가로채고 싶진 않다.


부담스런 자유시간.

비단길 여행의 두번째 특징. 여행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자유시간을 준다. 처음엔 명절에 던져놓은 윷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지만... 슬금슬금 다니다보면 동네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서서히 발견한다. 내가 좋아하는 골목, 마음에 쏙 드는 가게, 시간가는 줄 몰랐던 책방... 지구 반대편에서 여행전에 꿈꿨던 나만의 여행. 자유시간과 방치가 무엇이 다를까? 인솔자가 일행에게 자유시간을 준다는 것은 치밀한 준비와 굉장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난 아직 그 깐이 안된다. 아이들은 모르지만 피렌체 시내에 아이들을 던져두고 몰래 뒤를 밟던 긴장감이라니......



일정 마치고 공항에 도착.

긴 비행을 마친 아이들은 피곤해보이지만 중력이 센 곳에서 얻은 귀한 경험들은 곧 퇴비처럼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며칠 동안 몇 통의 문자가 온다. 즐거웠다는 말. 또 가고싶다는 말. 고맙다는 말. 나도 많이 고맙다.


방학인데 즐거움으로 포장한 힘든 수업을 진행한 것같이 미안하기도 하다.

See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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